며칠전, 무심코 넘기던 뉴스 기사 하나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정부가 호남에서 생산한 전기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보내기 위해, 서해안에 거대한 송전선로(HVDC)를 까는 계획을 본격화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건조한 활자로 적힌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는데, 제 머릿속에는 뜬금없이 지난 기억 하나가 흑백영화처럼 떠올랐습니다.
바로 2024년 가을, 영광의 바닷가입니다.
2024년 가을, 홍농에서 마주한 '거대한 빨대'
기억하시나요? 24년 가을, 영광 군수 재보궐 선거는 참 치열했습니다.
당시 저는 진보당 이석하 후보 선거 지원을 위해 영광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루는 유세 현장을 잠시 떠나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홍농읍의 지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제 눈을 붙잡았습니다.
서해의 붉은 노을 아래 웅장하게 솟아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의 둥근 돔.
그리고 산등성이를 타고 끝도 없이 이어진 송전탑의 행렬.
그때는 그저 '발전소 주변이니 어쩔 수 없겠지'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넘겼던 그 풍경이, 기사를 보고 나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 저 철탑들이 결국 빨대였구나."
그 거대한 송전탑들이 지역을 살리는 혈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의 에너지를 뽑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를 수송관이었던 겁니다.

300년의 내어줌, 그리고 남은 것
문득 서글픈 질문 하나가 가슴을 때립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내어주는 땅'으로 살아야 할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호남의 지난 300년은 희생의 역사였습니다.
나라가 배고플 땐 곳간을 열어 쌀을 보냈습니다.
산업화가 한창일 땐 구로공단으로, 울산으로 우리 아들딸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다 내어주고 텅 빈 마을에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가 닥쳤는데,
이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만든 에너지마저 서울로, 용인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사람도 가고, 전기도 떠나면, 이 땅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습니까?
위험 시설과 노인들만 남는 땅. 그게 우리가 바라는 호남의 미래는 아닐 겁니다.
전기를 보낼 게 아니라, 공장이 와야 합니다
이제는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방 소멸'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기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공장을 내리는 것입니다.
전기를 끌어다 용인에 공장을 짓는 게 아니라, 전기가 넉넉한 이곳 영광으로, 호남으로 반도체 공장이 내려오는 게 상식 아닐까요?
전 세계 기업들이 그토록 찾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실현이 가능한 곳도 바로 여기, 호남이니까요.
공장이 내려와야 청년이 돌아옵니다. 그래야 소멸해가는 마을에 다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2024년 가을, 제가 영광의 현장에서 보았던 그 송전탑들이 '수탈의 통로'가 아니라, 지역 산업을 돌리는 '자립의 기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사를 덮으며 다짐해 봅니다.
당연한 듯 요구하는 그들의 논리에 "이제는 안 된다, 순서를 바꾸라"고 말해야겠습니다.
호남의 바람과 햇살, 그 에너지가 온전히 우리 삶을 지키는 데 쓰이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은주의 정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어폰을 꽂고 섬처럼 서 있는 청년들에게" : 김태형 소장 강연 후기 (1) | 2026.01.29 |
|---|---|
| 경산에서 마주한 풍경, 우리 광주의 '특별한 희생'은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1) | 2026.01.25 |
| "주민 편에서 땀으로 뜁니다" 서구의원 김태진의 4년 약속과 실천 (3) | 2026.01.18 |
| 2026년 광주, 제2의 뉴육 맘다니를 꿈꾸다: 이은주와 김태진의 도전 (0) | 2026.01.12 |
| 젠슨 황의 피지컬 AI, 답은 호남의 재생에너지에 있다 (0) |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