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 책상 하나에서 배운 ‘진짜’ 경제
지난 1월 30일, 중부신협 정기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조합원분들과 악수도 나누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앉아 있으니, 자꾸만 쉰 살도 더 된 해묵은 풍경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고향 전북 임실, 우리 집 대청마루 한편에는 낡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좁은 책상 앞에 앉아 밤늦도록 장부를 정리하시곤 했습니다. 1970년대, 지정환 신부님과 함께 임실치즈공장을 일구며 신협을 처음 만드셨던 시절의 모습입니다.
"그때의 신협은 거창한 금융기관이라기보다, 당장 내일 씨앗 살 돈이 없거나 아이 등록금이 급한 이웃들이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 만든 '비상금 주머니'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서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 믿으셨죠. 그 마루 끝 책상이 제가 본 첫 번째 ‘정치’이자 ‘경제’였습니다.

숫자가 채울 수 없는 온기
총회장에서 만난 이웃들의 손을 잡으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풍요로워졌고, 은행 건물은 더 높고 화려해졌는데, 왜 정작 우리 삶은 더 팍팍해졌을까요?
고금리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소상공인과 대출 이자 걱정에 밤잠 설치는 청년들의 한숨이 깊습니다. 금융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비가 올 때 우산을 뺏는 금융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돈의 흐름이 오직 이윤만을 쫓아 달려갈 때, 그 속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살피는 ‘곁의 눈길’이 무뎌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잊고 지낸 ‘상호부조’의 정신이 지금 우리 동네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다시, 사람을 향하는 방향
제가 정치를 하며 현장을 발로 뛰는 이유도 사실 아버지가 그 낡은 책상에서 하시던 일과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삶에 닿아야 합니다.
제도가 바뀌어서 내 지갑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막막했던 내일이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되는 것. 그 구체적인 변화가 없다면 정치는 그저 공허한 말잔치일 뿐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서로의 어깨를 기댔던 신협의 정신처럼 정치가 우리 동네의 든든한 ‘비상금’이 되고 ‘우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담론보다는 오늘 마주친 주민의 한마디에 담긴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신협 총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 아버지가 장부를 정리하시던 그 묵직한 필기구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 마음 잃지 않고 걷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정치는, 혹은 우리 동네의 금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우리가 잃어버린 ‘함께 사는 법’에 대해, 이번 주말에 이웃들과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은주는 주민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봄바람이 머문 자리, 다시 주민의 곁으로 | 이은주 서구의원 예비후보 등록 (1) | 2026.02.20 |
|---|---|
| 다음 버스는 또 오니까요 (0) | 2026.02.12 |
| "핫팩 하나로 다 녹지 않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0) | 2026.01.29 |
| 치평동 도서관의 멈춰버린 47일,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0) | 2026.01.26 |
| "차 조심, 사람 조심해라" 50대 조카에게 건넨 노수녀님의 당부 (0) |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