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버스는 또 오니까요
오늘 아침, 동천동 버스정류장에서 인사를 드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다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한 여성분이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고 계셨어요. 주변 분들이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한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그 청년은 참 차분했습니다.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환자의 가족에게도 연락을 취하더군요. 그사이 버스가 한 대, 두 대 지나갔습니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고, 결국 그 넓은 승강장에는 환자와 학생, 그리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구조대원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따뜻한 온열 의자에 환자를 눕히고 119를 기다리며 응급실 어플을 뒤져봤습니다. 정류장마다 응급구조용 번호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환자분이 무사히 실려 가는 걸 보고 나서야 학생과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뇨, 아직 전공 공부 중이에요."
"그런데 버스가 아직도 안 왔어요?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아, 아까 제 버스 갔어요. 다음 거 타면 돼요."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에어팟을 귀에 꽂는 뒷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요.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 맴돌았습니다. "다음 거 타면 돼요." 우리는 매일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있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1분 1초를 아끼며 앞만 보고 달립니다. 그런데 오늘 그 청년은 자기 버스가 떠나는 걸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숨 가쁜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다음 버스는 또 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옆에서 쓰러진 사람에게는 '다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멈출 줄 아는 사람이, 오늘 아침 그 정류장에 있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개인주의에 빠져 있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졌다, 여러 말들이 오갑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저는 그 말들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에어팟 하나로 깨달았습니다. 그 청년은 누가 시키지도, 누가 보고 있지도 않은 자리에서 가장 따뜻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 곁에는 이런 청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다만 그들은 에어팟 속 자기 세계에 조용히 들어가 있을 뿐, 누군가 쓰러지면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청년들이 지금 힘겨운 시대를 건너고 있습니다. 취업과 주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옆 사람의 숨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서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아침 그 정류장에서, 저는 오히려 제가 배웠습니다.
대단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119에 전화하고, 옆에서 기다려주고, 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부'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을 겁니다.
나의 소중한 것을 잠시 내려놓고 이웃을 살핀 그 청년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려 합니다. 그런 따뜻한 멈춤들이 모여 우리 동네가, 우리 하루가, 조금 더 살 만한 것이 되는 거겠지요.
오늘 여러분의 아침은 어떤 풍경이었나요?
혹시 주변에 '다음 버스'를 기다려줄 만큼 소중한 장면이 있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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